이태리 사르데냐섬 코르크마개 Italy2012-09-20 09:47:35

수게로 나무, 코르크 오크

학명 쿠에르쿠스 수베르(Quercus Suber), 외피를 채취해 사용할 수 있는 참나무의 일종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해변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르데냐(Sardegna). 벼르고 벼르던 차에 지난 달 리서치 여행을 핑계로 이 섬을 다시 찾았다. 이탈리아 양유치즈의 대명사 페코리노(Pecorino)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곳이자, 폭발적인 힘의 화이트 와인, 베르멘티노 디 갈루라(Vermentino di Gallura) 그리고 장수촌 레드 와인 칸노나우(Cannonau)로도 유명한 곳. 그런데 이 청정의 섬이 가진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와인병마개로 사용되는 천연 수게로(Sughero naturale)이다.

 

사르데냐에서 수게로의 사용은 4천 년 전부터 벌써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대 누라기 족의 유적지를 보면 지금도 주거지로 쌓아 올린 바위 사이사이에 끼워진 수게로 조각들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단열은 물론 방음과 방충 효과까지 있는 이 천연재료는 그 옛날부터 이곳 삶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칼란자누스(Calangianus), 수게로의 고장

 

 

지중해에서도 장화반도가 유럽 남서부와 아프리카 북서부를 향해 끌어안고 있는 바다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은 사르데냐. 칼란자누스는 이 섬 북동부에 위치하는 인구 4천의 작은 코무네이다. 전 세계 VIP들의 휴양지, 에메랄드 해변(Costa Smeralda)과 가까워 유명하기도 한 올비아(Olbia) 항에서 차를 타고 내륙으로 조금 달리면 곧 좁은 도로 양옆으로 빽빽하게 보이는 수게로 자생지에 들어서게 되는데, 30분 정도면 진초록의 수게로 숲에 둘러싸여 있는 해발 520미터의 고지대 마을, 칼란자누스에 도착할 수 있다. 사실 20만 헥타르에 이르는 사르데냐의 수게로 자생지는 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특히 칼란자누스 주변은 그 가공업으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87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작지만 큰 100대 고장’으로 선정된 것도 모두 이 수게로 가공 기술력 덕분이다. 그 중심에 3대째 탄탄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족경영 다국적기업 몰리나스(Molinas). 안티노리(Antinori), 모에 샹동(Moet Chandon), 멈(Mum) 등 굵직굵직한 와이너리들이 주 고객인 이 사르데냐 토종기업은 지역주민 90%의 생계를 보장하고 있기에 그 사회경제적 책임도 또한 막중하다. 운 좋게 지인의 도움으로 몰리나스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인 스캄푸두(Scampuddu)씨를 만나 수게로 산업을 둘러싼 여러 현실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아낌없이 벗어주는 나무

잘 알려져 있듯, 수게로 숲은 지중해 연안 특히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아프리카 북서부에 집중해 있다.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도 무성하게 자라고, 지독한 산불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 상록수의 평균 수명은 약 200년이라고 하는데, 외피 채취는 20년 이상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수게로 나무가 와인 맛 좀 볼 수 있는 외피를 생산하려면 3차 채취가 가능한 나이 40은 되어야 한다는 것. 100세 사람 수명으로 따지자면 20세 정도에 해당하는 나이니, 수게로 계에도 엄연히 ‘미성년목’의 개념이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한 번 외피를 벗겨낸 자리에 새 조직이 생겨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년, 사람은 이 사이 자칫 있을지도 모르는 벌목을 가끔 단속하며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나무와 숲이 다 알아서 한다. 채취를 반복할 때 마다 외피의 두께와 질은 향상되는데, 그 때마다 수게로 나무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뿜어내는 산소의 양도 늘어나 그 증가율이 최대 4~5배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맑은 공기와 수게로 숲의 보호 하에 21세기에도 종을 이어갈 수 있는 희귀 야생동식물의 세상이 존재하니, 이를 고려하면 수게로 나무가 생태계에 기여하는 부분은 엄청나다.

 

수게로 채취는 보통 5월에서 8월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이 시기가 되면 얇은 손도끼 하나만 달랑 들고 두 세 명이 그룹을 지어 수게로 나무를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팍, 팍, 찌직, 찌직’ 언뜻 보면 막 찍어대는 것 같지만, 한 그루 한 그루 산림당국의 보호를 받는 귀하신 몸에 아무나 손을 댈리가 없다. 실지로 수게로 채취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외과의의 정교함과 다년의 경험이 요구된다고 하는데, 그 만큼 손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와인과의 만남을 위해 10년을 기다렸건만, 큼지막한 크기로 채취를 마친 수게로 조각들은 분류작업을 거쳐 이번에는 1년 이상 비바람을 맞으며 야적 상태에서 숙성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단계가 지나야 비로소 끊는 물에 삶거나 압력스팀으로 찌는 첫 번째 처리에 들어가는데, 수용성 불순물을 제거하는 동시에 수게로의 부피와 탄력성을 증가시키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물이다. 사시사철 섬 곳곳에서 천연 샘물이 솟는 사르데냐. 지금도 섬사람들에게 있어 ‘생수’의 정의는 ‘딱한 육지인들이 돈을 주고 사 마셔야하는 그저 그런 물’이라는데, 사르데냐의 수게로 처리에 사용되는 물은 절대적으로 자연용출 우물물이라고 한다. TCA의 ‘T'소리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업계 사람들에게 와인에 그 외의 영향을 줄지도 모를 인공정화수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알루미늄과 실리콘 산업이 무섭게 밀어붙이고 있는 시장경쟁 속에서 수게로 업계의 가장 큰 적 TCA(2,4,6-TriChloroAnisole). ‘트리클로로아니솔’이라는 이 이름도 고약한 성분은 수게로 내부에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도 하지만, 한 병의 와인이 놓일 수 있는 환경 어느 곳이든, 평범한 나무용 방부제나 청소에 사용되는 일반 세제의 염소성분이 공기 중의 곰팡이와 결합해 와인과 반응하면 생성되어 주위를 오염시킨다. 그렇기에 와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의 ‘자연스러운’ 청결상태 역시 중요한데, 어쨌든 수게로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 지독한 녀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기술력 향상을 위해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몰리나스의 특허 시스템 제네시스(Genesis)의 한 예처럼, 주요국들의 관련 기업들이 앞 다투어 상품에 해가 될 만한 위험 성분 제거 또는 감지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노력의 일부분이다.

 

벗어야 사는 나무

고온에서 삶고, 말리고, 1차 성형하고, 특별시스템으로 처리하고, 2차 성형하고, 멸균하고, 3,4차에 이르는 선별작업하고 로고인장 찍은 후 마지막으로 윤활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병입을 기다리는 국내외 고객사에 배송되는 병마개용 수게로.

 

<자동화가 불가능한 수게로 작업. ‘생활의 달인’ 이탈리아 편을 보는 듯, 다 똑같아 보이는데, 거울을 앞에 두고 앉아

컨베이어 벨트 위로 지나가는 수게로 마개들 중 불완전한 상품을 순식간에 골라잡아 휙휙 날리는

여직원들의 손놀림이 놀랍다.이 작업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라고 한다.>

 

<초기 수작업이 들어가는 수제 마개.

특별한 와인에디션에는 마개도 특별 제작. 포도원의 요구에 따라 특정 카테고리의 와인을 위해서는

그 한정 수량이 장인에게 따로 맡겨진다.>

 

개인적으로 와인이라는 미스터리한 세계의 지평선을 넓혀주기만 한다면, 코르크, 알루미늄, 실리콘, 마개의 종류와 관계 없이 나라와 품종에 주목하며 와인을 즐긴다. 그것이 옳고 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선택에 있어 마개의 재료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면, 특별히 선물을 해야 할 때이다. 그 순간만큼은 고지식하게도 별다른 갈등 없이 수게로 와인을 택하고 또 택해왔다. 그런데 침묵 속의 수게로 숲을 눈에 담고 온 지금, 그 선택에 육중한 무게감이 실리는 느낌이다.

 

언젠가, 수게로는 천연자원인 만큼 고갈의 염려가 있어 장기 숙성용 와인이 아닌 경우 실리콘이나 스크류 캡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들은 적이 있다. 업계의 입장이 궁금했는데, 직접 속사정을 들어 보니, 와인생산자가 자발적으로 천연 수게로 외 다른 재질의 마개를 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므로 그 부분에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마케팅을 목적으로 자원남용이라는 표현을 말 그대로 ‘남용’하거나 일부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나는 지나친 채취 예를 일반화시켜 인공마개 사용을 장려하는 것은 오히려 수게로 나무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수게로는 인간이 기다릴 줄만 알면,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영원한 자원이다. 산지면적은 적어도 생산량의 70%가 와인산업에 흡수된다는 특징과 함께 세계 3위의 수게로 채취국인 이탈리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사르데냐. 이탈리아의 수게로 업계는 그 규모가 세계 총생산량의 5%에 지나지 않지만, 그 적은 양으로 내수를 커버하는 것은 물론 두터운 해외 고객층까지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채취한 수게로는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재활용해 2차 상품을 만들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가공 과정 중 발생하는 가루마져 모두 모아쓰고 있기에 이들에게 숲의 착취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전 세계 코르크 숲은 약 220만 헥타르, 몇 년 사이 벌써 5,6만 헥타르가 줄어들었다. 많은 부분이 개간되어 대규모 작물농장이 되었다고 한다. 경기침체와 함께 와인소비도 줄어들고 자연스레 그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2차 산업도 위축되고, 적당한 그늘과 외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산소탱크 외에 별다른 ‘열매’가 없는 수게로 숲의 보금자리는 결국 제2의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 인간에 의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아낌없이 벗어주던 나무가 이제 벗지 않으면, 벗을 수 없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WWF에 따르면 현재 7대 3을 유지하고 있는 천연마개와 인공마개 업계의 비율이 몇 년 안에 뒤집어질 것이라고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형색색의 실리콘 마개와 와인업계 전문지들의 스크류 마개 칭송기사를 접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반전은 좀 어렵지 않을까 웃어넘겼는데, 오늘따라 천연 수게로 와인을 마시자고 절박하게 외치며 끝을 맺었던 어느 환경단체의 기사 한토막이 머릿속을 무겁게 맴돈다.

 

<참고>

http://www.molinas.it

http://www.qualitycork.com

w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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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프랑스 와인여행자   
Badia A Passign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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